이동진이 말하는 통제할 수 없는 인생을 사는 법
출처 채널: 최성운의 사고실험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이동진 평론가가 약 20년간 블로그 대문에 고정해 온 문장이다. 이 문장은 어느 인터뷰 자리에서 불쑥 나왔다. 말하고 나서 스스로도 "내가 진짜 그렇게 믿는 것 같다"고 느꼈고, 이후 저서 『밤은 책이다』에 수록됐으며 결국 블로그의 대문 글이 됐다.
문장의 액센트는 뒤쪽에 있다
이 문장은 흔히 앞부분—하루하루는 성실하게—으로 소비된다. 이동진은 그 해석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사실 그 말의 액센트는 뒤쪽에 있어요.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를 받아들이겠다는 태도가 사실은 더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의 단위는 극히 짧다. 한 시간, 하루 정도가 의지가 강한 사람에게 허락된 최대치다. 반면 넓고 긴 시간은 외부의 힘이 개인의 집념보다 압도적으로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통제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가 능동의 영역이라면,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는 수용의 영역이다.
인생관은 실패를 통해 형성됐다
이동진은 스스로를 "유달리 실패가 많았던 사람"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집념이 강한 사람이라는 자기 확신이 흔들린 경험은 분명히 있었다. 유학을 준비하다 군 입대로 방향이 바뀐 과정이 대표적 사례다. 개인의 의지가 외부의 우연적 변화 앞에서 얼마나 작은 힘인지를 체감한 순간이었다.
그는 자기 이해가 깊어지는 경로를 이렇게 설명한다. 실패 속에서 "아, 나는 이걸 이 정도밖에 좋아하지 않는구나" 혹은 "나는 이것 없으면 못 사는구나"를 확인하는 것. 삶에서의 부정과 불능이 무엇인지를 실패를 통해 역방향으로 발견해 온 것이다.
흘리지 않는 1인분의 삶
이동진은 팬들에게 사인을 할 때 자주 쓰는 문구로 흘리지 않는 1인분의 삶을 꼽는다. 이 문구는 타인에 대한 권고이기 이전에 자신을 향한 다짐이다. 그는 자신의 좌절과 실패를 외부에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수십 년을 살았다. "좌절의 내용은 내가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이 태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동진을 처음부터 품격 있는 코스를 밟아온 지식인으로 오해한다. 그는 이를 인정하면서도 실패의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다. 거절조차 "가장 예의 바르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타르콥스키가 열어준 문
15권의 저서를 쓴 이동진의 정체성은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 쓰는 사람에서 출발했다. 영화 평론으로 본격 전환한 계기는 대학 시절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작품들이었다. 『안드레이 류블로프』의 마지막 장면—종이 울리고 주인공이 침묵을 깨는 순간—을 보며 "영화라는 매체가 이런 것이구나"라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특정 작품에 대한 감동을 넘어, 매체 자체의 위대함을 발견한 것이다.
그 결과물은 당시 기준으로 "보잘것없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지금도 글을 쓰고 나서 "더 좋을 수 있는데"라는 좌절이 "나쁘지 않네"라는 만족보다 훨씬 더 많다고 말한다. 그 미진함을 매번 경험하면서도 마감을 지켜온 것이 20년 넘는 평론가 이력의 실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