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니가 물을 그린 진짜 이유, 캔버스 위의 찰나
출처 채널: 예술의 이유
누군가 막 뛰어들었다. 수면은 하얗게 부서지고, 물방울은 공중에 흩어졌다. 그런데 사람은 없다. 튀어오른 물만 남아 있고, 캔버스 위엔 태양 아래 잠잠한 로스앤젤레스의 수영장이 펼쳐진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A Big Splash(더 큰 천장, 1967)를 처음 마주했을 때 드는 감정은 묘하게 익숙하다. '저 물속에 뛰어드는 게 나였으면.'
물이 많은 화가, 그 이유
호크니의 작품을 쭉 훑다 보면 자연스레 눈에 띄는 게 있다. 물이다. 샤워하는 장면, 수영하는 장면, 심지어 스프링클러까지. 왜 이렇게 물이 많을까. 그 답은 1960년대 초, 호크니가 영국 왕립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가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런던 화단은 잭슨 폴록류의 추상 실험으로 들끓고 있었다. 하지만 호크니는 추상보다 자신 주변의 장소와 사람에 훨씬 더 끌렸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에 발을 딛는 순간, 그는 완전히 매료됐다. 따뜻한 햇살, 자유분방한 사람들, 런던과는 전혀 다른 공기. 호크니는 그 도시를 약속된 땅이라 불렀다.
물은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어떤 색도 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고, 시각적으로 정해진 것이 없다.
캘리포니아의 여유로운 일상을 담다 보니, 그 순간들엔 이상하게도 물이 많았다. 수영장, 샤워기, 잔잔한 수면. 물은 찰나를 담기에 가장 적합한 소재였고, 호크니에게 물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삶의 온도를 담는 그릇이었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호크니의 작업 방식은 독특했다. 보통 화가들이 밑그림부터 시작하는 것과 달리, 그는 롤러나 큰 브러시로 캔버스 전체에 색을 먼저 넓게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세세한 요소들을 하나씩 얹었다. 맨 마지막에 남기는 건 언제나 물이 튀는 장면이었다.
A Big Splash를 그릴 때, 뒤편의 멋진 건물이나 야자수보다 물 튀는 효과를 그리는 데 훨씬 긴 시간을 쏟았다. 물이 튀어오른 형태와 부분마다 다른 투명도를 표현하는 데만 무려 2주가 걸렸다고 한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찰나를 붙잡기 위해, 그는 가장 느리게 작업했다.
물이 튀는 장면을 찍을 때 물은 이미 다른 무언가가 돼버린다. 이 순간이 너무 빨리 지나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물을 그릴 때 굉장히, 굉장히 느리게 작업했다.
호크니를 만든 세 가지 충격
호크니의 작품 세계는 여러 층위의 영향이 쌓여 만들어졌다. 26살에 직접 다녀온 이집트 여행에서 그는 고대 벽화의 선명한 색감에 깊이 빠져들었다. 사진기 없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그려냈던 그 3주는 그의 작품 인생에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한다. 르네상스 회화의 우아한 구성과 밝은 색채도 함께 흡수됐다.
미국에서 마주친 아메리칸 팝아트도 빼놓을 수 없다. 만화적인 색채와 강한 선 처리, 일상을 담는 방식—호크니는 이를 자신의 언어로 녹여냈다. 그리고 1960년대 보급형 카메라의 등장. 찰나를 기록하는 사진은 호크니에게 큰 영감을 줬지만, 그는 사진을 도구로만 봤다.
- 이집트 벽화 — 선명한 색감의 원천
- 르네상스 회화 — 균형과 우아함
- 팝아트 — 강한 선과 일상의 언어
- 사진 — 찰나를 포착하는 영감, 그러나 도구에 불과
회화가 사라진다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대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충분하지 않다. 사진은 진짜가 아니다.
결국 사람들의 삶 속으로 작품이 스며들게 만드는 건 예술가의 시각과 깊이라고 호크니는 믿었다. 그가 물을 그린 건, 가장 빠르게 사라지는 것을 가장 오래 붙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빛에 따라, 각도에 따라, 흐르는지 고여 있는지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물. 지금 당신의 눈엔 어떤 찰나가 비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