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00km의 역사, F1은 어떻게 죽음과 싸워왔는가

출처 채널: LIFEPLUS TV

당신이 F1 경기를 TV로 볼 때, 그 장면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지금 트랙 위를 시속 300km로 달리는 저 차가 헬멧 착용조차 의무가 아니었던 시절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안전벨트도 없었고, 관중과 트랙 사이의 경계는 화분이나 짚더미가 전부였다. 보러 가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F1 이전, 죽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1950년 F1이 공식 출범하기 전부터 모터스포츠는 이미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1903년에는 파리에서 마드리드까지 달리는 도시 간 레이스가 열렸는데, 사람들은 생전 처음 보는 쇠덩어리가 자기 집 앞을 지나갈 줄 몰랐다. 그 결과는 참혹한 사망자 속출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위험하다'고 규정하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에게 마차 사고도, 자동차 사고도 그냥 '운이 없는 일'이었을 뿐이다.

F1 시대로 넘어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랑프리 레이싱 기준으로 매달 한 명씩 드라이버가 죽어 나가는데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영화 Rush에 등장하는 그 대사—"25명의 드라이버 중 매년 평균 두 명씩 죽는다"—가 단순한 극적 과장이 아니라 실제 통계였다는 것. 그것이 1970년대까지의 현실이었다.

왜 그랬을까. 해설위원 윤재수 위원은 그 이유를 문화의 언어로 설명한다. 모터스포츠를 주도한 이들은 "겁쟁이는 빠져라"는 정서 위에 세계를 구축했다. 위험을 인정하는 순간 그 세계의 논리가 무너지기 때문에, 위험 자체를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신문은 사망 사고를 미화하고, 극적인 우승 스토리만 전 유럽으로 퍼뜨렸다. 정보는 통제되었고, 인식은 바뀌지 않았다.

변화는 한 사람의 싸움에서 시작됐다

트리플 챔피언 재키 스튜어트(Jackie Stewart)는 동료들에게 '겁쟁이'라 불리면서도 안전을 위해 싸운 사람이다. 그는 경기 후 차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이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경기 중에 차가 뒤집히고 불이 난 걸 봤다. 그러나 레이스가 중단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달려야 한다. 결국 안전하게 만드는 건 그걸 관리하는 사람들의 책임이다.

그는 드라이버들을 설득해 서킷 안전 설비가 확보되지 않으면 출전을 거부하는 보이콧을 이끌었다. 안전을 무시하는 드라이버들—심지어 같은 이름을 가진 레전드 재키 익스(Jacky Ickx)와도—정면으로 충돌했다. 그의 노력으로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며 F1의 안전 기준은 조금씩 높아졌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제 안전은 됐다"고 방심한 약 10년 사이, 속도는 다시 폭발적으로 빨라졌다. 안전에 대한 긴장이 풀린 바로 그 순간, 역사상 가장 참혹한 한 주가 찾아왔다.

1994년 이몰라, 모든 것이 바뀐 일주일

1994년 산마리노 그랑프리. 금요일, 루벤스 바리첼로가 머리를 크게 다쳐 생사의 기로에 섰다. 토요일, 롤란드 라첸버거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일요일, 아일톤 세나(Ayrton Senna)가 레이스 도중 사망했다. 사흘 사이에 한 명이 죽을 뻔하고 두 명이 죽었다. 그것도 약 12년간 F1에서 사망 사고가 없었던 시기가 끝난 직후의 일이었다.

세나의 죽음은 F1 팬들에게는 상징적 붕괴였다. 윤재수 위원도 그 소식을 듣고 "안 봐야겠다"는 생각에 한동안 F1을 끊었다고 고백한다.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고, 이번에는 정말로 바뀌었다. 이후 헬멧과 차체의 강도 기준, 충돌 흡수 구조, 트랙 안전 설비 전반에 걸친 개혁이 뒤따랐다.

2014년 일본 그랑프리에서 줄스 비앙키가 중태에 빠진 사고 이후에도 추가적인 안전 개선 사항들이 도입됐다. F1의 안전 역사는 비극과 개혁의 반복으로 쌓인 것이다.

드라이버의 시야와 객관성의 한계

F1의 안전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주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사고 책임의 문제다. 윤재수 위원은 한마디로 정리한다. "아전인수는 우수한 드라이버의 기본 소양"이라고. 드라이버는 오직 앞만 본다. 좁은 미러, 빠른 속도, 좁아지는 시야—그 상황에서 객관적인 판단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세나의 유명한 말—"틈이 보였는데 파고들지않으면 드라이버가 아니다"—도 바로 이 맥락에서 자주 오해된다. 이 말은 어떤 틈이든 무조건 파고들라는 뜻이 아니다. 능력이 된다면 두려움에 지지 말고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지, 사고가 날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밀어붙이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문장은 유럽에서도, 한국에서도 종종 무모한 드라이빙을 정당화하는 데 인용된다.

한국, 잠재력은 충분하다

윤재수 위원은 흥미로운 시각을 하나 덧붙인다. 한국은 F1 인재를 배출할 잠재력이 충분한 나라라는 것이다. 택시를 타도 옆 차 한 대가 앞질러 가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그 기질, 지지 않겠다는 본능적인 경쟁심—그것이 모터스포츠를 하는 마음의 출발점이라고 그는 말한다. 문제는 그 기질이 공도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발현된다는 것이다.

해결책은 교육이 아니다. 두 시간씩 12주 과정의 강의로는 아무도 오지 않는다. 대신 재미를 먼저 느끼게 해야 한다. F1을 보면서 "잘하는 드라이빙이 그냥 밟는 게 아니구나"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이 진짜 변화의 시작이다. 안전에 대한 인식도, 드라이빙에 대한 이해도, 결국 스스로 흥미를 갖게 될 때 비로소 깊어진다.

원본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9m89h2cJb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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