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의 낭만을 걷어내면 보이는 것들: 이승건의 현실 브리핑

출처 채널: 아산나눔재단

창업가를 주제로 한 키노트는 대개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로 흐른다. 성공 신화를 극적으로 재연하거나, 청중에게 '당신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거나. 그런데 이 영상은 처음부터 다른 방향을 선택한다. 이승건은 무대에 올라 청중에게 앞으로 겪게 될 일의 목록을 읽어준다. 위로가 아니라 예보에 가깝다.

이 영상을 제대로 소화하려면, 그가 사용하는 몇 가지 개념과 맥락을 미리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단어는 단순하지만, 그 단어들이 지시하는 현실은 꽤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테나시티(Tenacity): '끈기'가 아니라 '이유'

이 키노트의 출발점은 tenacity라는 단어다. 통상 '끈기'로 번역되지만, 이승건은 이 단어를 '이유'로 재정의한다. 이것이 이 영상 전체를 관통하는 프레임이다. 끈기는 타고나는 자질이나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충분히 강력한 이유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라는 것.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대부분의 창업 서사가 끈기를 성격이나 태도의 문제로 다루기 때문이다. '당신이 포기한 건 의지가 약해서'라는 귀결은 개인을 탓하는 방식이지만, 이승건의 프레임에서는 포기의 원인이 다르게 진단된다. 충분한 이유 없이 시작한 창업은, 의지가 강해도 버티기 어렵다는 것이다.

스톡데일 패러독스: 낙관주의의 함정

영상 중반, 이승건은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를 언급한다. 베트남전 포로였던 제임스 스톡데일 제독이 관찰한 역설로, 포로 생활에서 가장 먼저 무너진 사람들은 비관론자가 아니라 근거 없는 낙관론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엔 나가겠지", "다음 달엔 풀려나겠지"라고 믿다가, 그 기대가 무너질 때마다 정신이 먼저 꺾였다.

이승건이 이 개념을 꺼내는 맥락은 팀 운영이다. 그는 팀원들에게 단기적 희망을 주는 대신, "우리는 당분간 계속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을 먼저 말해준다고 밝힌다. 단기적 동기부여엔 독이지만, 장기적 생존력을 만든다는 논리다.

좋은 이유와 나쁜 이유: 창업 동기의 수명

이 영상에서 가장 실용적인 대목은 창업 동기를 '수명'의 관점으로 분류한 부분이다. 이승건은 오래 가는 이유와 그렇지 않은 이유를 직접 나열한다.

지속되지 않는 이유들로 그는 다음을 꼽는다:

  • 창업이 쿨해 보여서
  • 좋은 기술을 갖고 있어서 뭔가 될 것 같아서
  • 수백억을 벌고 싶어서 (1년 반을 넘기기 어렵다고 말한다)
  • 지금 다니는 회사가 싫어서
  • 내 아이디어가 너무 좋아서

반면 오래 가는 이유들은 다르다. 해결하지 않으면 잠이 안 오는 문제, 자신을 무시한 누군가에게 증명하고 싶은 욕구, 동료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감각, 혹은 단순히 이 일 말고 인생에서 관심 가는 게 없다는 사실. 이유의 질이 끈기의 수명을 결정한다.

창업의 현실: 미리 알아야 할 장면들

이승건은 창업 이후 벌어질 일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한다. 가족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 고소를 당하는 것(공동창업자, 직원, 투자자 모두 가능성 있다고 말한다), 팀원들 앞에서 반복적으로 틀리는 것,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이 최소 3년, 통상 10년에서 13년이라는 시간 위에 얹혀 있다는 것.

여기서 이 영상의 성격이 분명해진다. 동기부여가 목적이 아니라, 진입 전 현실 점검이 목적이다. 그는 창업경진대회 무대에서 이렇게 말한다. "10년이 아니다 싶으면, 지금 멈추는 게 더 나을 수 있다"고.

성장이라는 단 하나의 지표

영상 후반부에 이승건은 끈기와 경청이 충돌처럼 보이는 지점을 짚는다. 자신의 아이디어에 고집을 피우는 것과 끈기 있게 나아가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스타트업의 핵심 지표는 하나, 성장이다. 폴 그레이엄이 말한 주당 7%, 연간 약 164%의 성장. 아이디어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이라는 메트릭에 집착해야 한다는 논리다.

결국 이 영상은 끈기를 가르치는 강의가 아니다. 끈기가 어디서 오는지, 어떤 이유가 10년을 버티게 하는지, 그리고 그 10년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를 미리 보여주는 자리다. 영상을 보기 전에 스스로 한 가지를 물어볼가치가 있다. 나는 지금 어떤 이유로 이 일을 하려 하는가. 그 이유가 오래 가는 종류의 것인지, 이 영상은 판단의 기준을 나름대로 제시한다. 이승건이 여덟 번의 실패 끝에 토스를 만든 것은 재능이나 운이 특별히 달라서가 아니라, 그만둘 이유보다 계속할 이유가 더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그 이유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스스로 발견하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원본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GZv6NwaEIx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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