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를 듣기 전에 알아야 할 영국의 90년대

출처 채널: 우키팝

탈출구가 필요한 시대가 음악을 만든다

1988년과 1989년, 영국의 젊은이들은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이라 불린 계절을 살았습니다. 60년대 샌프란시스코가 LSD와 사이키델릭 록으로 들썩였다면, 80년대 말 영국은 엑스터시와 댄스 음악이 빚어낸 해방감으로 가득했습니다. 그 열기의 중심에 레이브(Rave)가 있었습니다. 수천 명이 거대한 장소에 모여 땀을 흘리며 춤을 추는 이 문화는 단순한 파티가 아니었습니다. 마거릿 대처의 강경 보수 정권이 길어지던 시절, 젊은이들에게 레이브는 사실상 유일한 탈출구였습니다.

맨체스터에는 하시엔다(Hacienda)라는 전설적인 클럽이 있었고, 노엘 갤러거도 80년대 말 이곳을 드나들며 댄스 음악을 들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대형 야외 레이브에 리암 갤러거가 참석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훗날 오아시스를 만든 두 형제는 이미 그 시절부터 이 에너지 안에 있었던 셈입니다.

레이브의 붕괴, 그리고 새로운 음악의 탄생

그러나 1989년 여름, 레이브는 비극을 맞습니다. 하시엔다를 찾은 한 소녀가 엑스터시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여론은 급격히 돌아섰습니다. 당국은 클럽과 야외 파티를 본격적으로 단속하기 시작했고, 레이브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레이브가 남긴 것은 컸습니다. 그 시절을 온몸으로 겪은 맨체스터의 인디 밴드들은 이제 록의 에너지와 댄스의 리듬을 결합한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은 매드체스터(Madchester)라 불렸고, 헤드뱅잉 대신 몸을 살살 흔드는 춤이, 가죽바지 대신 헐렁한 패션이 유행했습니다. 리암은 스톤 로지스 콘서트를 보고 밴드를 하겠다는 결심을 했고, 노엘은 맨체스터 대표 밴드의 오디션에 떨어진 뒤 스태프로 들어가 음악 현장을 몸으로 익혔습니다.

그러나 매드체스터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해피 먼데이스의 리더가 마약으로 무너졌고, 스톤 로지스는 2집을 너무 늦게 내면서 열기가 식어버렸습니다. 91년, 맨체스터 신에 공백이 생겼고, 그 자리를 너바나가 채웠습니다.

너바나의 침공과 영국의 반격

너바나의 비관적 그런지가 전 세계를 휩쓸던 시절, 영국에는 대항마가 없었습니다. 그때 등장한 것이 스웨이드(Suede)입니다. 스웨이드는 영국 밴드 특유의 멜랑꼴리와 경쾌함으로 "미국이 영국 음악을 납치했다"며 일침을 가했고, 영국 언론은 열광했습니다. 싱글 두 장만 낸 밴드가 어워즈 무대에 서고, 1993년에는 유니언 잭과 함께 음악 잡지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블러는 미국 투어에서 실패하고 돌아온 뒤 재빠르게 눈치를 챘습니다. "미국 다닐 때가 아니구나"라고 깨달은 블러는 60년대 킹스의 음악을 강박적으로 들으며 영국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했고, 그렇게 나온 2집은 브릿팝(Britpop)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습니다.

오아시스가 올라탄 파도의 정체

91년 결성된 오아시스는 93년까지 무명으로 지냈습니다. 그러다 글래스고의 한 공연에서 인디 레이블 크리에이션 레코즈(Creation Records)의 앨런 맥기의 눈에 띄었고, 그날 밤 바로 계약이 성사됐습니다. 때마침 BBC 라디오1의 새 수장이 된 매튜 베니스터는 낡은 관행을 깨고 새로운 음악을 전면에 내세웠고, 무명의 오아시스 곡 콜럼비아가 플레이리스트에 오르며 기대감을 키웠습니다.

1994년 4월, 커트 코베인이 세상을 떠나던 바로 그 달에 오아시스는 데뷔 싱글 슈퍼소닉을 발표했습니다. 오아시스는 브릿팝이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전부터 합주실에 유니언 잭을 걸어두고, 비틀즈를 숭배하고, 맨체스터 노동계급의 억척스러움을 음악에 담았습니다. 시대가 원하는 것이 정확히 그것이었습니다.

"나도 한번 살아보자는 삶에 대한 의지로 가득한 앨범이라 보컬도, 연주도 시원하고 힘이 넘쳐요. 여러분, 야망을 가지세요. 단칸방 말고 펜트하우스를 꿈꾸란 말입니다."

2집은 지금까지 2천만 장 이상 팔렸고, 2019년 라디오워드에서 지난 30년간 발매된 영국 앨범 중 최고작으로 선정됐습니다. 96년 8월, 노스 런던 네브워스에서 열린 전설적인 공연에는 영국 인구의 4%에 달하는 15만 명이 몰렸습니다. 오아시스는 더 이상 하나의 밴드가 아니라, 당시 영국 자체였습니다.

쿨 브리타니아의 절정, 그리고 균열

1997년, 영국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사람들은 이 시대를 쿨 브리타니아(Cool Britannia)라 불렀고, 유니언 잭은 저항의 상징에서 유행의 아이콘으로 바뀌었습니다.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는 총선 승리 후 브릿팝 밴드들을 다우닝가 파티에 초대했고, 오아시스의 노엘은 기꺼이 샴페인 잔을 들었습니다. 반면 블러는 정치권이 이 열기를 이용하는 낌새를 일찌감치 눈치채고 거리를 뒀습니다.

그러나 절정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쓴소리를 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오아시스의 3집은 노엘이 스스로 인정하듯 코케인에 절어 만들어졌고, 주변의 극찬을 끝내 믿지 못한 채 발매됐습니다. 앨범이 나온 지 11일 만에 다이애나 비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며 영국 전체가 슬픔에 잠겼고, 들썩이던 브릿팝의 열기도 서서히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쿨 브리타니아는 그렇게,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울었습니다.

원본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YFK65oJ2z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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