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세 개짜리 문어가 심장 하나짜리 인간에게 묻는 것

출처 채널: 김응빈의 응생물학

병뚜껑을 혼자 여는 동물이 있다. 미로를 통과하고, 더 좋은 보상을 위해 당장의 먹이를 참는다. 오랫동안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 여겼던 것들이다. 그런데 이 동물은 척추가 없다. 뇌가 머리에만 있지도 않다.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는데, 어쩌다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문어 이야기다. 그리고 이 영상은 문어를 소재로 훨씬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지능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공감이란 무엇인가.

우리와 달라서 똑똑한 존재

문어의 신경계는 인간의 상식을 비껴간다. 약 5억 개의 뉴런 중 절반 이상이 머리가 아니라 여덟 개의 다리에 분산되어 있다. 각 다리가 뇌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감각을 처리하고 움직인다. 마치 여덟 개의 작은 뇌가 협력하는 구조다. 이를 생물학에서는 분산형 신경계라 부른다.

눈의 구조도 인간과 놀랍도록 닮았다. 수정체, 홍채, 망막까지 갖춘 카메라 눈. 그런데 이 유사성은 모방이 아니다. 진화적으로 완전히 다른 경로를 걷다가 같은 해답에 도달한 것, 즉 수렴 진화의 결과다. 문어는 우리처럼 생겨서 똑똑한 게 아니라, 우리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화했는데도 높은 지능에 도달한 생명체다.

심장은 세 개다. 두 개는 혈액을 아가미로 보내 산소를 공급하고, 하나는 그 산소 가득한 혈액을 온몸으로 순환시킨다. 분산된 신경계가 그만큼 많은 산소를 소비하기 때문에 생겨난 구조다. 열심히 헤엄칠수록 온몸 순환을 담당하는 심장의 기능이 떨어진다는 아이러니도 따라온다. 효율 대신 생존을 택한 몸이다.

소설이 과학보다 먼저 알아챈 것

영상은 셀비 반펠트의 소설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을 때』(원제: Remarkably Bright Creatures)를 함께 읽는다. 수조에 갇힌 대왕문어 마셀러스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에서, 문어는 인간을 관찰하고 감정을 읽고, 때로는 인간보다 깊게 사람을 바라본다.

주인공 토바는 남편을 잃고, 하나뿐인 아들마저 의문의 사고로 떠나보냈다. 작은 마을의 소문은 더 잔인하다. 아들이 어머니와의 갈등 끝에 스스로 생을 끊었다고 왜곡되어 퍼진다. 토바는 사람들을 피해 밤마다 아쿠아리움에서 청소를 하며 마셀러스와 조용한 시간을 나눈다. 그리고 마셀러스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린다.

대체로 나는 구멍을 좋아한다. 내 수조 위에 있는 구멍이 내게 자유를 준다. 하지만 그녀의 심장에 생긴 구멍은 싫다. 심장이 세 개인 나와 달리 그녀의 심장은 하나뿐이다. 그 구멍이 메워지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

영상을 만든 김홍빈은 책을 덮은 뒤 가장 오래 남은 것이 문어의 뉴런도, 세 개의 심장도 아니었다고 말한다. 상처 입은 인간을 향한 문어의 연민이었다고.

아쿠아리움 문이 닫힌 뒤에야 시작되는 이야기

제목이 뒤늦게 이해된다. 관람객이 빠져나가고 조명이 꺼진 밤, 문어는 비로소 한 인간의 상처를 읽고 인간은 비로소 한 생명체의 마음을 만난다. 진짜 이야기는 문이 닫힌 뒤에야 시작된다.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문어는 이런 대사를 남긴다. "인간은 나보다 훨씬 많은 단어를 가지고 있음에도 서로 소통할 줄을 모른다." 과학 다큐도, 힐링 소설도 아닌 이 영상이 결국 던지는 질문은 여기에 있다. 5억 개의 뉴런을 가진 문어가 심장 하나짜리 인간보다 더 잘 듣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지능의 정의를 다시 세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혹은 누군가의 구멍을 오래 외면해온 사람이라면, 이 영상이 꽤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게 이 영상을 봐야 할 이유다.

원본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oCAcAssgJWU

Cut-off 앱에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