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골목이 걷기 싫은 이유, 주차장법에 있었다
출처 채널: 셜록현준
서울 뒷골목 사진과 도쿄 뒷골목 사진을 나란히 놓으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한쪽엔 자전거가 천천히 지나가는 한적한 골목, 다른 한쪽엔 불법 주차 차량이 양쪽을 점령하고 주차 금지 패널 바로 옆에 차가 세워진 풍경. 그리고 이게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뒷골목이다. 씁쓸하지만, 더 씁쓸한 건 이게 우연이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출발선, 다른 법 한 줄
런던이나 파리라면 변명이라도 된다. 제국의 세금으로 수백 년에 걸쳐 지은 도시니까. 하지만 도쿄와 서울은 다르다. 둘 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으로 초토화된 뒤, 20세기 후반에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지은 도시다. 출발점이 같았던 두 도시가 70년 만에 완전히 다른 풍경을 갖게 된 결정적 변수, 이 영상은 그걸 '주차장법'에서 찾는다.
한국의 주차장법은 건물을 짓는 사람이 주차를 해결하게 돼 있다. 연면적에 따라 의무적으로 몇 대를 확보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반면 일본에는 차고지 증명제가 있다. 차를 사는 사람이 자기 주차 공간을 먼저 증명해야 차를 살 수 있다. 책임의 주체가 다르다. 그리고 이 철학의 차이가 도시의 생김새를 통째로 바꿨다.
1층이 주차장이 되는 순간, 도시는 걷기를 포기한다
우리나라 필지의 대부분은 100평 이하다. 이 규모에서 지하 주차장은 불가능하고, 결국 1층은 필로티 주차장이 된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임대료가 가장 비싼 1층을 통째로 주차장에 헌납하는 셈이다. 100m를 걸을 때 가게 입구가 30개쯤 있어야 '걷고 싶은 거리'가 된다는 이른바 이벤트 밀도 개념을 대입하면, 우리 골목은 처음부터 설계 단계에서 보행자를 포기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반면 일본은 차를 사는 사람이 주차를 해결하니, 건물주는 1층을 온전히 임대 상가로 쓸 수 있다. 소규모 필지도 사업성이 나오고, 골목마다 작은 가게들이 채워지고, 걷는 사람이 늘고, 소비가 일어난다. 도시의 보행 환경은 도시계획의 결과가 아니라, 주차장법이라는 규제 하나의 결과였다.
자동차가 '프라이빗 공간'이 된 사회
여기서 한 가지 역설이 등장한다. 한국 젊은이들이 차를 사는 이유 중 하나가 이동 수단이 아니라 나만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도시 안에서 혼자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없으니, 차 안이 유일한 프라이빗 공간이 된다. 그러니 차를 산다. 차를 사니 주차장 수요가 늘고, 주차장 수요가 늘면 주차장 의무 공급 압력이 커진다. 골목은 더 주차장으로 채워진다. 걷기는 더 불편해진다. 차가 더 필요해진다.
건물주가 주차장을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과, 자동차를 사는 사람이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 이 철학의 차이가 도시를 만든다.
도요타가 도라에몽 캐릭터를 앞세워 운전면허 취득을 장려하는 광고를 낼 정도로 일본 젊은이들이 차를 안 산다는 건,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차를 사는 비용이 진짜로 비싸지는 구조, 그리고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가 만들어져 있다는 두 가지가 맞물린 결과다.
주차장법이 막고 있는 것들
이야기는 여기서 더 깊어진다. 지금 한국의 건설 시장은 대형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문제로 흔들리고 있다. 빈 상가를 주거로 전환하는 소규모 개발이 활성화되면 주택 공급 문제에도 현실적인 돌파구가 될 수 있는데, 그 앞을 막고 있는 게 또 주차장법이다. 상업 시설을 주거로 바꾸면 법적으로 요구되는 주차 대수가 더 늘어나는 구조여서, 소규모 전환 프로젝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결국 이 단순해 보이는 법 하나가, 보행 환경·자영업 생태계·주택 공급·부동산 시장까지 한 줄로 묶어놓고 있다. 영상이 던지는 질문은 그래서 단순하지 않다. 주차장을 누가 책임져야 하느냐는 질문이, 사실은 어떤 도시에서 살 것이냐는 질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