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은 왜 스페인에 삼켜지지 않았나

출처 채널: 지식한잔

지도 위에서 이베리아 반도를 보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는 통일했고, 이탈리아도 통일했고, 독일도 결국 하나가 됐다. 그런데 저 좁은 반도 안에서 언어도 비슷하고 문화도 닮은 두 나라가 어떻게 지금까지 따로 살고 있는 걸까. 지리도, 언어도, 종교도 — 통합을 막을 이유가 딱히 없어 보이는데.

그런데 바로 그 "딱히 없어 보이는" 전제가 틀렸다. 포르투갈이 스페인에 흡수되지 않은 건 우연이 아니라, 900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선택되고 쟁취된 결과였다. 이 영상은 그 선택의 매 순간을 짚어 나간다.

국가는 선언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11세기 후반, 포르투갈은 레온 왕국 변방의 백작령에 불과했다. 이슬람 세력을 밀어내는 레콩키스타의 최전선이었고, 권력을 쥔 자는 중앙이 아닌 변방에서 독자적인 기반을 다지고 있었다. 아폰수 엔히크스가 1128년 어머니 세력을 꺾고 권력을 잡았을 때, 그가 원한 건 단순한 승계가 아니었다. 레온 왕국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 즉 독립이었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 독립은 칼만으로 얻어지지 않았다. 교황의 인정이 필요했다. 아폰수는 오랜 외교 끝에 1179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로부터 공식 군주로 승인받았다. 이슬람 세력과 싸워 기독교 세계를 지켜온 공로가 인정된 것이었다. 국가는 선언이 아니라 외부의 승인으로 완성됐다. 포르투갈이 일찌감치 배운 교훈이었다.

통합의 기회는 두 번 왔고, 두 번 모두 실패했다

1383년, 포르투갈 국왕 페르난두 1세가 아들 없이 사망했다. 그의 딸은 카스티야 왕국의 왕과 결혼한 상태였다. 왕위 계승의 논리대로라면 두 왕국은 혼인으로 자연스럽게 합쳐질 수 있었다. 카스티야 입장에서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할 기회였다.

그러나 포르투갈의 상인, 성직자, 귀족, 도시 민병대가 들고일어났다. 이들은 왕실 혼인이라는 명분 뒤에 흡수·합병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1385년 알주바로타 전투에서 수적으로 열세였던 포르투갈군은 카스티야군을 완파했다. 그리고 같은 해, 잉글랜드와 윈저 조약을 체결하며 외부 동맹을 확보했다. 이 조약은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 유지된 군사동맹 중 하나로 꼽힌다.

두 번째 기회는 1580년에 왔다. 포르투갈 왕조가 대가 끊기자, 스페인의 펠리페 2세가 어머니의 혈통을 내세워 포르투갈 왕좌에 앉았다. 이베리아 연합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건 합병이 아니었다. 펠리페 2세는 포르투갈의 법, 제도, 해외 식민지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약속해야만 했다. 통합이 아니라 동거였고, 동거는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억지로 붙인 것은 더 세게 튕겨나간다

이베리아 연합의 문제는 간단했다. 스페인의 적이 포르투갈의 적이 되었다는 것. 포르투갈이 전 세계에 깔아놓은 해상 식민지들은 스페인의 적국들에게 손쉬운 먹잇감이 됐다. 게다가 스페인은 포르투갈에 더 많은 세금과 군사 지원을 요구했다. 자신들과 무관한 전쟁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던 포르투갈인들의 분노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1640년, 포르투갈은 반란을 일으켰다. 이후 28년간의 왕정복고 전쟁. 스페인은 프랑스와의 전쟁에 발이 묶여 군사력을 집중할 수 없었고, 포르투갈은 다시 한번 잉글랜드의 지원을 받아냈다. 1668년 리스본 조약으로 스페인은 포르투갈의 주권을 공식 인정했다. 억지로 붙인 동거는 결국 더 강한 분리 의지를 낳았다.

바다가 통합의 필요를 지웠다

역설적이게도, 두 나라를 영구적으로 갈라놓은 건 전쟁보다 대항해 시대였다. 15~16세기,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좁은 반도 안에서 서로의 영토를 다투는 대신 지구 전체를 반으로 나눠 가졌다. 교황의 중재 아래 각자의 항로를 분리하고, 각자의 제국을 건설했다. 경제 구조도, 식민지 관리 체제도 완전히 다른 두 갈래로 나뉘었다. 굳이 합칠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1986년, 두 나라는 유럽 공동체에 동시 가입했다. 이 순간부터 통합 논의는 완전히 무의미해졌다. 국경을 허물지 않아도, 경제와 안보를 함께 나눌 더 큰 틀이 생겼으니까.

결국 포르투갈이 살아남은 건 지리 덕분도, 우연 덕분도 아니었다. 독립을 선택한 세력, 외부 동맹을 만들어낸 외교, 그리고 바다로 눈을 돌린 전략이 켜켜이 쌓인 결과였다. 스페인이 흡수를 시도할 때마다 포르투갈은 내부 결속과 외부 지원을 동시에 끌어냈고, 두 나라가 각자의 제국을 경영하는 동안 반도 안에서 싸울 이유는 점점 희박해졌다.

900년 가까이 유지된 국경선은 그 모든 선택의 물리적 흔적이다. 오늘날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가 나란히 존재하는 이베리아 반도는, 통합이 역사의 필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원본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pxDewLK3i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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