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주사위를 던졌다 — 숫자 2.697이 바꾼 우주의 규칙

출처 채널: 세모과학

1982년 새벽 4시, 프랑스의 한 실험실. 차가운 형광등 불빛 아래 모니터 화면이 깜빡이고, 숫자 하나가 천천히 자리를 잡았다. 2.697.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숫자가, 사실은 아인슈타인이 죽는 날까지 지키고 싶어 했던 세계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양자역학의 문을 연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다

흔히 아인슈타인을 양자역학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고집스러운 패배자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광전 효과를 설명하며 빛이 파동이 아니라 입자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했다. 금속판에 빛을 비출 때 어떤 빛은 아무리 약해도 전자를 튀어나오게 하고, 어떤 빛은 아무리 강해도 전자를 꿈쩍도 못하게 한다는 현상. 파동 이론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이 수수께끼를 그가 풀어낸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것은 상대성 이론이 아니라 바로 이 광전 효과 연구 덕분이었다. 그가 직접 양자 세계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열어둔 문 앞에서 멈췄다

1920년대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디렉이 양자역학의 수학적 토대를 완성해가면서 물리학자들은 원자 세계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점점 불편해졌다. 핵심은 해석의 문제였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입자는 측정하기 전까지 정해진 값을 갖지 않는다. 가능성의 형태로 존재하다가 측정하는 순간 하나의 현실로 결정된다는 것.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이 확률을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확률이란 우리가 모든 정보를 갖지 못했을 때 쓰는 불완전한 도구일 뿐이라고 믿었다. 동전이 앞면이 나올 확률이 50%인 건 동전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회전 속도와 공기 흐름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생각. 그는 자연이 원래부터 결정되어 있는 세계를 원했다.

1935년, 아인슈타인이 꺼낸 가장 기묘한 카드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의 수식 안에서 이상한 현상 하나를 발견했다. 양자 얽힘이었다. 두 입자가 얽혀 있다면, 한쪽을 측정하는 순간 다른 쪽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즉각 상태가 결정된다는 것. 입자 A가 플러스라면 입자 B는 반드시 마이너스, 설령 B가 안드로메다 은하에 있어도. 그런데 상대성 이론은 어떤 정보도 빛보다 빠르게 전달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결론을 내렸다. 두 입자는 처음부터 이미 어떤 숨겨진 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양자역학은 그 숨은 정보를 아직 담아내지 못한 불완전한 이론이다. 이것이 이른바 국소적 숨은 변수 이론의 핵심이었다.

잊혀진 질문을 다시 꺼낸 사람, 존 벨

아인슈타인과 보어가 모두 세상을 떠난 1964년, 아일랜드의 물리학자 존 벨이 오랫동안 먼지 속에 묻혀 있던 이 질문을 다시 꺼냈다. 그는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의 말이 맞다면 반드시 만족해야 하는 수학적 한계가 있어야 한다. 벨은 그것을 찾아냈고, 이름을 붙였다. 벨의 부등식.

실험 방식은 이렇다. 얽힌 광자 두 개를 만들어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보낸다. 각 방향에 두 가지 편광기 각도(L1, L2, R1, R2)를 배치하면 가능한 조합은 총 네 가지. 수많은 광자 쌍을 측정해 각 조합의 상관관계를 계산한다. 만약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두 광자가 처음부터 숨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네 가지 조합에서 얻은 상관관계 값을 더하고 빼도 그 결과는 절대 2를 넘을 수 없다. 하지만 양자역학이 맞다면 그 값은 2를 넘어 최대 2√2까지 도달할 수 있다. 문제는 단 하나, 실험으로 확인하는 일이었다.

물속의 소리로 빛의 길을 꺾은 청년

문제가 있었다. 실험의 가장 큰 허점은 입자 A를 측정할 때 그 정보가 빛의 속도로 입자 B에 전달되어 결과를 조작할 가능성, 이른바 국소성 허점이었다. 이를 막으려면 광자가 광원에서 검출기까지 날아가는 단 20나

노초 안에 측정기의 방향을 바꿔버려야 했다. 수십 킬로그램의 쇠덩어리 측정기를 그 찰나에 돌리는 것은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했다.

1970년대 후반, 프랑스의 물리학자 알랭 아스페가 이 불가능한 실험에 도전했다. 그의 해법은 기발했다. 장치를 돌리는 대신, 물속에 강한 초음파를 쏘아 빛의 경로 자체를 1억분의 1초 만에 꺾어버리는 것이었다. 초음파가 물의 밀도를 주기적으로 바꾸면 굴절률도 함께 변하고, 빛은 보이지 않는 파동의 벽에 튕겨 경로를 바꾼다. 아스페는 이 원리를 이용해 10나노초마다 광자의 측정 경로를 전환하는 장치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두 광자가 날아가는 동안 서로 어떤 정보도 교환할 수 없는 완벽한 차단이 실현된 것이다.

2.697, 아인슈타인의 세계가 무너지다

마침내 실험이 시작됐다. 칼슘 원자에서 방출된 얽힌 광자 쌍들이 하나씩 날아갔고, 검출기에는 신호가 쌓여갔다. 초반에 흔들리던 숫자는 점차 한 방향으로 수렴했다. 1982년 새벽 4시, 모니터에 고정된 숫자는 2.697이었다. 아인슈타인의 세계가 허락한 최대치 2를 명백하게 넘어선 값. 벨의 부등식은 위반됐고, 숨은 변수 이론은 실험적으로 부정됐다. 얽힌 입자들은 처음부터 답을 나눠 가진 독립된 두 물체가 아니었다.

이후 과학자들은 실험에 남아 있던 허점들을 하나씩 메워갔다. 그리고 2022년, 알랭 아스페, 존 클라우저, 안톤 차일링거가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그 메달은 단순히 아인슈타인이 틀렸음을 증명한 데 대한 상이 아니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질문을 포기하지 않고 붙든 사람들, 그리고 100년의 시간을 넘어 끝내 답을 찾아낸 사람들에게 바치는 헌사였다. 자신을 가장 위대한 패배자로 만들지라도 기어이 진리의 문을 두드리는 그 집요한 용기야말로, 인류의 미래를 바꾸는 진짜 힘이다.

원본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qEZ_K5tc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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