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조를 건 화성 이주, 과학자들은 왜 고개를 젓는가

출처 채널: 세모과학

3,000조 원. 숫자를 입 안에서 굴려봐도 감각이 잡히지 않는다. 그 돈이 붙은 곳은 로켓을 만드는 회사다. 정확히는, 붉은 행성 위에 인류의 두 번째 집을 짓겠다는 약속이다. 사람들은 스페이스X의 주식을 샀지만, 사실 그들이 산 건 탈출구에 대한 믿음이었을지 모른다. 지구가 무너지더라도 인류는 끝나지 않는다는, 그 오래되고 간절한 상상.

그런데 정작 우주를 연구해 온 과학자들은 그 꿈 앞에서 다른 표정을 짓는다. 그들의 질문은 단순하다. 그곳에서 정말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예상보다 훨씬 불편하다.

우리가 공짜로 받아온 것들

숨을 쉰다. 물을 마신다. 햇빛 아래를 걷는다. 지구에서 이것들은 너무 당연해서 이름조차 붙이지 않는다. 산소, 적정 기온, 대기와 자기장이 막아주는 우주 방사선, 생명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생태계. 이 모든 것을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공짜로 받았다.

화성에는 그 당연한 것들이 단 하나도 없다. 표면에 서는 순간, 그곳이 행성이라기보다 사실상 진공에 가까운 우주 공간이라는 걸 온몸이 먼저 안다. 과학자들이 내리는 결론은 이렇다. 화성에서의 삶이란 자연이 없는 곳에 자연을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일이다.

이른바 폐쇄형 생태계 시스템이 그 해답으로 연구되어 왔다. 화성 대기의 대부분을 이루는 이산화탄소에서 산소를 뽑아내고, 두꺼운 밀폐 구조물 안에 공기를 채워 기압을 맞춘다. 지하의 얼음을 캐내 물로 정화하고, 혹독한 추위는 단열재와 난방으로 버티며, 방사선은 화성의 흙과 물탱크와 두꺼운 벽으로 막는다. 원리적으로는,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 희망 회로를 돌려볼 여지는 있다.

영화가 자연스럽게 생략한 것

영화 마션에서 주인공은 화성 기지 안을 자연스럽게 걸어다닌다. 관객은 그 장면에서 아무것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의 물리학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중력은 공기처럼 채워 넣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거대한 질량이 만들어내는 힘이다.

지구가 우리를 붙잡고 있는 건 지구가 그만큼 무겁기 때문이다. 화성의 중력은 지구의 38%에 불과하다. 원심력이나 가속으로 '중력처럼 느껴지는 힘'을 만드는 방법이 연구되어 왔지만, 화성 표면에 세운 도시 전체를 팽이처럼 돌릴 수는 없다. 결국 화성 기지 안에서도 사람의 몸은 지구보다 훨씬 가벼운 중력 아래에 놓인다.

그 결과는 서서히 찾아온다. 뼈가 약해지고, 근육이 무너지고, 심장이 작아진다. 중력은 단순히 발을 바닥에 붙여두는 힘이 아니다. 피와 장기, 뼈와 근육, 세포 안의 물질까지, 몸 전체에 근원적으로 작용하는 힘이다. 기술이 극한까지 발전해도 화성의 도시가 지구와 완전히 같은 환경이 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과학자들의 결론이다.

감자 한 알이 공학적 사건이 되는 곳

살아남는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먹는 일은 어떻게 될까. 화성의 흙은 흙이라기보다 돌가루에 가깝다. 거기에는 과염소산염 같은 치명적인 독성 물질도 섞여 있다. 식물을 키운다는 건 흙을 정화하는 것부터 시작해, 물과 영양분, 빛과 온도, 공기 성분의 비율까지 예민하게 계산해야 하는 공학의 영역이 된다. 그곳에서 자란 감자 한 알은 '재배'라는 말이 어색해질 정도의 공학적 생산품이다.

요리도 마찬가지다. 지구에서 연기와 냄새는 환풍기를 켜면 해결된다. 화성에서는 공기를 밖으로 버릴 수 없다. 그 공기 하나하나를 정화하고 순환시켜 다시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화성의 부엌은 요리하는 공간이기 전에, 밀폐된 생명 유지 시스템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화학 공장이다.

버리는 것도 없다. 소변은 정화되어 다시 물이 되어야 하고, 대변은 탄소·질소·인으로 분해되어 순환해야 한다. 지구에서 '쓰레기'라 불리던 모든 것이, 화성에서는 잃어버리면 안 되는 자원이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시스템을 단 1초도 멈추지 않고 돌려야 하는 것이 바로 전기다. 화성에서의 정전은 불편함이 아니다. 공기 순환이 멈추고, 물 정화가 멈추는, 생존의 문제다.

그럼에도 인류는 왜 바라보는가

여기까지 들으면 화성 이주는 인류 역사상 가장 무모한 계획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질문은 곧 다른 질문으로 이어진다. 왜 우리는 이 지구조차 다 고치지 못한 채로, 아무것도 없는 행성에 도시를 짓겠다고 하는 걸까.

바다 끝에 괴물이 산다고 믿던 시대에도 누군가는 배를 띄웠다. 하늘은 신의 영역이라 믿던 시대에도 누군가는 기어이 날개를 만들었다.

이 계획이 매력적인 이유는 쉬워서가 아니라, 너무나 어렵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상은 여기서 한 가지 다른 점을 짚는다. 바다를 건너다 실패해도 지구의 공기는 남아 있었다. 달에 가더라도 돌아올 푸른 행성이 등 뒤에 있었다. 화성은 그 조건이 다르다.

그래서 이 영상이 던지는 진짜 질문은 '갈 수 있느냐'가 아니다. 어떤 문명을 가지고 갈 것인가. 지구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그대로 싸들고 가게 될 새로운 장소, 그것이 화성이라면, 우리는 출발하기 전에 먼저 무언가를 결정해야 한다. 영상은 그 질문을 당신에게 건네고, 답은 유보한 채로 끝난다.

원본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uGHKdZZhC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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