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거리에 100만 명이 쏟아진 날, 무슨 일이 있었나
출처 채널: 지식한잔
2010년 7월 10일, 바르셀로나 도심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100만 명이 넘는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그들의 손에는 깃발이, 목에는 구호가 걸려 있었다. "우리는 하나의 국가다. 결정은 우리가 한다." 관광 엽서 속 낭만적인 도시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대체 무엇이 이 사람들을 거리로 불러냈을까.
카탈루니아. 스페인 북동부에 자리한 이 지역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르셀로나가 있는 곳, FC 바르셀로나의 연고지 정도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 도시의 표면 아래엔 수백 년을 내려온 균열이 있다. 자치와 억압, 부흥과 탄압이 교차하며 쌓인, 쉽게 봉합되지 않는 상처들.
빼앗긴 언어, 닫힌 대학
이야기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카탈루니아는 스페인이라는 복합 군주제 안에서도 독자적인 의회와 법률, 세금 제도를 운영했다. 공공행정과 상업에서 카탈루니아어만을 썼고, 왕의 권력조차 이들의 지역 제도 앞에서는 함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그 균형이 무너진 건 1701년이었다. 스페인 왕위계승 전쟁에서 카탈루니아는 패전국 편에 섰고,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렀다. 1716년, 새로운 왕 펠리페 5세는 법령 하나로 수백 년간 유지해온 자치 제도를 전부 폐기했다. 의회도, 법률도, 세금 제도도. 그리고 모든 공문서에서 카탈루니아어 사용을 금지했다. 바르셀로나 대학을 포함한 지역 대학 여섯 곳이 강제로 문을 닫았다. 언어를 잃은 민족이 어떤 감각으로 하루를 버텨내는지, 그 무게가 100년 넘게 이어졌다.
경제가 살아날수록 정체성도 타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문화적 암흑기 동안 카탈루니아의 경제는 성장했다. 18세기 후반 아메리카 대륙과의 무역이 활기를 띠고, 면방직 산업을 중심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빠르게 산업화를 이룬 지역이 되었다. 돈이 생기자, 억눌렸던 정체성을 꺼내는 데 쓰였다.
19세기 중반, 카탈루니아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언어, 예술을 복원하는 르네상스 운동에 막대한 자금을 쏟았다. 민족적 자긍심은 곧 정치적 목소리가 되었다. 20세기엔 독립정당이 창당되었고, 1931년 스페인 제2공화국 출범과 함께 잠시 자치권을 되찾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는 그들에게 다시 한번 칼을 들었다. 1936년, 스페인 내전.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승리하면서 카탈루니아의 자치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다. 이번엔 언어 금지를 넘어, 문화 지도자들이 투옥되거나 처형되었고, 살아남은 이들은 망명길에 올랐다.
전 세계 축구 팬들이 열광하는 엘클라시코,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라이벌 매치가 유달리 치열한 이유도 이 역사와 맞닿아 있다. 모든 카탈루니아 문화가 탄압받던 시절, 캄 노우 경기장은 카탈루니아 사람들이 유일하게 자신들의 언어로 소리칠 수 있었던 마지막 해방구였다.
합법적으로 통과된 법이 4년 뒤 폐기된 날
1975년 프랑코가 사망하고, 스페인은 민주주의 국가로 돌아왔다. 카탈루니아는 1979년 자치법을 되찾았고, 이후 수십 년간 온건한 방식으로 조금씩 권한을 늘려왔다. 완전한 독립을 외치는 목소리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전환점은 2006년이었다. 카탈루니아 의회는 새로운 자치법을 통과시켰다. 핵심은 카탈루니아를 단순한 자치주가 아닌 하나의 국가(네이션)로 명시하는 것이었다. 스페인 중앙 의회도 승인했고, 카탈루니아 주민 투표도 통과했다. 완벽히 합법적인 절차였다.
그런데 4년 뒤인 2010년, 스페인 헌법재판소가 이 법의 핵심 조항들을 위헌으로 폐기했다. 카탈루니아가 스스로를 '국가'라고 칭한 부분은 법적 효력이 없다고, 독자적인 사법권과 언어 우선 사용 권한도 인정할 수 없다고. 그 판결이 발표된 지 열흘 후, 100만 명이 바르셀로나 거리로 나왔다.
2017년, 투표함을 빼앗기던 날
독립 지지율은 판결 이전 15~20% 수준에서 2012년 48%까지 급등했다. 여기에 2008년 금융위기가 겹쳤다. 스페인 전체 인구의 16%를 차지하면서 국가 경제의 약 20%를 떠받치는 카탈루니아는, 그 경제 위기 속에서도 막대한 세금을 중앙 정부에 납부하고 있었다. 분노는 더 이상 자치권 확대 요구가 아니라 완전한 독립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2017년 10월 1일, 카탈루니아는 구속력 있는 독립 주민투표를 강행했다. 스페인 정부는 수천 명의 무장 병력과 경찰을 투입해 투표함을 압수하고 투표하려는 시민들을 진압했다. 그럼에도 전체 유권자의 43%가 참여했고, 그중 90%가 독립에 찬성했다. 카탈루니아 의회는 열흘 뒤 독립 공화국 창설을 일방적으로 선포했다.
스페인 정부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강경했다. 자치권은 전면 박탈되었고, 지도자들은 최대 1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자치 정부 수반 카를레스 푸지데몬은 벨기에로 망명했다.
지금 카탈루니아는 어디쯤 서 있나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스페인 중앙정부의 정권이 교체되었고, 2024년엔 독립운동 관련자 상당수를 사면하는 법이 통과되었다. 같은 해 5월 카탈루니아 지방선거에서는 14년 만에 처음으로 독립 지지 정당들이 과반 의석을 잃었다. 스페인 잔류와 통합을 주장하는 인물이 새 자치 정부 수반이 되었다.
2025년 공식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때 50%에 달하던 독립 찬성 여론은 37%로 내려앉았고, 독립 반대는 5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18세에서 24세 청년층의 독립 지지율은 47%에서 26%로 거의 반토막 났다. 기약 없는 독립 논쟁보다 주거 문제, 일자리, 경제 안정이 더 절실한 세대가 주인공이 된 것이다.
수백 년의 분노가 지금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하지만 영상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카탈루니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을 스페인과 다른 민족으로 여기고, 그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고. 이 갈등이 지금 어떤 국면에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디로 향할지—영상이 직접 펼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