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데 승진 못 하는 사람이 놓친 단 하나
출처 채널: 폴인 fol:in
교육 기간 1등, 이라크 파병, 청와대 행정관 파견. 어느 조직에서도 이 정도면 '일 잘하는 사람'의 교과서적 프로필이다. 그런데 승진은 누락됐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문제는 '일을 잘한다'는 개념 자체가 두 개의 언어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본인이 정의하는 일 잘함과, 상사가 정의하는 일 잘함은 같은 단어를 쓰지만 전혀 다른 사전을 참조한다. 그리고 승진을 결정하는 건 언제나 후자의 사전이다.
열심히 한다는 것과 인정받는다는 것은 다른 회로다
『이기는 직장생활』의 저자는 40대 초반까지 이 구분을 몰랐다고 고백한다. 건강이 무너지고 인간관계가 끊어질 때까지 일만 했다. 고전을 뒤졌다. 논어, 맹자, 중용, 손자병법, 데일 카네기까지. 그런데 답을 못 찾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가 찾던 질문이 틀렸기 때문이다.
그가 찾은 건 "왜 내가 승진을 못 했나"였지만, 진짜 질문은 "상사는 누구를 승진시키는가"였다. 선배 한 명이 건넨 말 한 마디가 수개월의 독서보다 빠르게 핵심을 꿰뚫었다.
"일만 하면 일을 시키고, 이쁘면 승진시킨다."
냉소적으로 들리지만, 이건 조직의 작동 원리를 가장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문장이다. 상사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을 선발한다. 능력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직장을 '이익을 거래하는 장소'로 보면 달라지는 것들
저자가 원래 책에 붙이고 싶었던 부제는 이렇다. "직장의 본질은 이익으로 거래하라." 출판사의 만류로 제목은 바뀌었지만, 이 한 줄이 책 전체의 핵심이다. 직장은 헌신의 공간이 아니라 소호 간 이익을 교환하는 구조라는 것.
이 프레임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게 바로 많은 직장인이 억울함에 빠지는 이유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면, 상대가 뭘 원하는지도 볼 수 없다. 거래가 성립하려면 두 개의 욕망이 필요한데, 한쪽이 자신의 욕망을 지운 채 '열심히'만 하고 있다면 그건 거래가 아니라 일방적 헌납이다.
'이긴다'는 말의 재정의
저자는 '이긴다'를 경쟁에서 타인을 제압하는 것으로 쓰지 않는다. 직장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 그게 이기는 것이다. 타인에게 기대를 걸지 않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는 것. 실망은 기대에서 오고, 소진은 인정받지 못한 헌신에서 온다.
그런데 여기서 영상이 던지는 진짜 질문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중간 관리자는 상사를 어떻게 매니징해야 하는가. 호감 지수를 높이는 건 아부인가, 전략인가. 그 경계는 어디에 있는가. 저자가 승진에 성공한 방법은 "업무를 좋아하는 상사를 운 좋게 만난 것"이었고, 그는 이 케이스를 후배에게 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운에 기대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답이 이 영상의 나머지 절반에 있다.